이윤열, 좋아했던 이들을 무참하게 격파하고 또 그들과 물고물리는 시간을 보내온 테란. 저그 입장에서는 갈아마시고 싶을 정도의 녀석이고 그걸 또 대놓고 이야기하기도 하나 그래도 이윤열은 싫지 않다.
홍진호와 더불어 대놓고 연습하지 않고도 가볍게 승리하던, 닿을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재능에 대한 동경일수도 있다. 그런데 홍진호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한없는 동경과 양립할 수 없는, 배신당한 마음 속에 남은 증오라는 모순된 감정이 혼재해있는 것에 반해 이윤열은 싫지 않다, 한 번도 그의 승리를 바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윤열은 그 천재성 때문에 허약한 마음이 두드러지는 경우였는데, IS가 해체되고 SG와 P&C에 있을 무렵에도 그가 주장으로 활동한 적은 없었다. 실력 자체는 주위에 견줄 자가 없는 최강이었으나 혼자 남게 되면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옆에는 어깨를 두드려주며 술 한 잔 따라줄 홍진호와 이재항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정상의 위치에서도 이윤열은 그들을 통해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옆에 없을 때 이윤열은 「가슴이 망가진 기계」, 딱 그 정도였다. 마음을 기댈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이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은 그의 재능과 대비되어 참으로 묘한 느낌을 주는 녀석, 그래서인지 이 녀석은 그때부터 주위의 많은 이들에게 기대려 하는, 심할 때는 비굴한 모습도 자주 보여줬다.
엠비씨게임, 예전의 겜비씨가 시도했던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그들 중 어떤 것에는 선수가 직접 팀원들과 만든 자신의 리플레이를 갖고 나와서 같이 이야기하며 경기를 복기해보는 코너도 있었는데, 대부분은 자신이 이긴 리플레이를 가져왔던 것 같다. 그때 이윤열은 로스트템플에서 박신영과 함께 했던 리플레이를 가져왔는데, 기억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윤열 자신이 패배한 것이었다. 복기 중 기회가 될 때마다 박신영이 얼마나 대단한 저그인지 강조하는 그를 보며 오히려 거북함을 느꼈던 것은 내가 너무 삐뚤어졌기 때문이었을까.
홍진호가 떠나고, 이재항이 이탈하고, 부친상을 당하고.. 그때 나는 이윤열이 끝날 줄 알았다. 정말 그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연약해빠진 그 심성은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오히려 더 기계 같은 임요환의 정신이 지배하는 이 바닥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그는 자신의 재능만으로 자신이 있어서는 안되는 곳에서 일가를 이루었으나, 그 재능을 받쳐주는 건 이윤열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돌아왔다. 천운의 우승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고 이들의 의견에 일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팀의 주장으로서, 가정의 가장으로서, 종족의 수장으로서 이를 악물고 '혼자서' 일어난 그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말없이 박수를 치는 것으로 하고픈 많은 말들을 대신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후에는 본의 아니게 온게임넷 대 엠비씨게임, 협회와 방송사 간의 대립구도에 휘말려들어 홍역을 치뤘다. 이윤열이 누구보다 자신을 핍박하던 이들을 위한 마지막 보루로 나서게 되었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결국 마재윤이라는 시대의 선택 앞에 무너지고 말았으나, 난 그때에 가서야 이윤열은 이렇게 끝날 선수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어진 마스터즈에서 마재윤 격파를 바로 이뤄낸 그를 보면서 「그래도 생각보다 너무 빨라, 이건 좀 너무 하네」하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이윤열이라는 사람이 가져본 적이 없었던 부서지지 않는 마음이 이제 그의 것임을 알기에 그렇게 쓰지만은 않았다.
많은 연습을 거듭해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지금의 자신보다야, 머리 속에서 떠오른 걸 즉석에서 실험한 것만으로 승리를 거두는 예전의 자신이 더 그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는 지금의 그의 모습은 3개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던 때보다 더 믿음직하다. 더 강하다고 느낀다면 조금 무리일 수도 있으나 심지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는 여전히, 다른 테란들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빌드를 이리저리 돌려서 더 강하게 만들어버리는 천재이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쫓기는 것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예전의 그에게서 볼 수 없었던 여유가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이윤열은 인터뷰에서 한동욱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 예전의 이윤열이라면, 그랬을 것 같다. 한동욱에게 기대고 있다는 느낌을 줬을 것이다. 들으나마나한 아부로 싶습셉습하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의 그는 오히려 다른 이들의 버팀목이자 울타리로 서있는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라는 오락질과 많은 이들이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말하자면 관점에 대한 이야기. 그곳에 있었던 이들에게는 공유할 수 있으나 서로 겹칠 수 없는 관점이 있으리라. 이윤열이라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보는 시간, 그것은 컨트롤이나 빌드, 멀티태스킹 같은 것이 더욱 정교해지고 세련되기까지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는 서지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어깨를 내주며 또 그들을 품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까지의 시간. 이윤열은 그렇게 성장해왔다.
그도, 그들도, 그리고 나도 다 같이 성장해왔습니다.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어요. 한순간에 사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이 바닥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할 때, 같이 웃고 울며 떠들었던 축제 같은 시간 대신에 한 소년이 남자가 되기까지의 시간을 되새기며 이 바닥은 헛된 곳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너무도 감성 짙은 이야기일까.
홍진호와 더불어 대놓고 연습하지 않고도 가볍게 승리하던, 닿을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재능에 대한 동경일수도 있다. 그런데 홍진호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한없는 동경과 양립할 수 없는, 배신당한 마음 속에 남은 증오라는 모순된 감정이 혼재해있는 것에 반해 이윤열은 싫지 않다, 한 번도 그의 승리를 바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윤열은 그 천재성 때문에 허약한 마음이 두드러지는 경우였는데, IS가 해체되고 SG와 P&C에 있을 무렵에도 그가 주장으로 활동한 적은 없었다. 실력 자체는 주위에 견줄 자가 없는 최강이었으나 혼자 남게 되면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옆에는 어깨를 두드려주며 술 한 잔 따라줄 홍진호와 이재항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정상의 위치에서도 이윤열은 그들을 통해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옆에 없을 때 이윤열은 「가슴이 망가진 기계」, 딱 그 정도였다. 마음을 기댈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이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은 그의 재능과 대비되어 참으로 묘한 느낌을 주는 녀석, 그래서인지 이 녀석은 그때부터 주위의 많은 이들에게 기대려 하는, 심할 때는 비굴한 모습도 자주 보여줬다.
엠비씨게임, 예전의 겜비씨가 시도했던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그들 중 어떤 것에는 선수가 직접 팀원들과 만든 자신의 리플레이를 갖고 나와서 같이 이야기하며 경기를 복기해보는 코너도 있었는데, 대부분은 자신이 이긴 리플레이를 가져왔던 것 같다. 그때 이윤열은 로스트템플에서 박신영과 함께 했던 리플레이를 가져왔는데, 기억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윤열 자신이 패배한 것이었다. 복기 중 기회가 될 때마다 박신영이 얼마나 대단한 저그인지 강조하는 그를 보며 오히려 거북함을 느꼈던 것은 내가 너무 삐뚤어졌기 때문이었을까.
홍진호가 떠나고, 이재항이 이탈하고, 부친상을 당하고.. 그때 나는 이윤열이 끝날 줄 알았다. 정말 그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연약해빠진 그 심성은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오히려 더 기계 같은 임요환의 정신이 지배하는 이 바닥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그는 자신의 재능만으로 자신이 있어서는 안되는 곳에서 일가를 이루었으나, 그 재능을 받쳐주는 건 이윤열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돌아왔다. 천운의 우승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고 이들의 의견에 일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팀의 주장으로서, 가정의 가장으로서, 종족의 수장으로서 이를 악물고 '혼자서' 일어난 그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말없이 박수를 치는 것으로 하고픈 많은 말들을 대신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후에는 본의 아니게 온게임넷 대 엠비씨게임, 협회와 방송사 간의 대립구도에 휘말려들어 홍역을 치뤘다. 이윤열이 누구보다 자신을 핍박하던 이들을 위한 마지막 보루로 나서게 되었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결국 마재윤이라는 시대의 선택 앞에 무너지고 말았으나, 난 그때에 가서야 이윤열은 이렇게 끝날 선수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어진 마스터즈에서 마재윤 격파를 바로 이뤄낸 그를 보면서 「그래도 생각보다 너무 빨라, 이건 좀 너무 하네」하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이윤열이라는 사람이 가져본 적이 없었던 부서지지 않는 마음이 이제 그의 것임을 알기에 그렇게 쓰지만은 않았다.
많은 연습을 거듭해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지금의 자신보다야, 머리 속에서 떠오른 걸 즉석에서 실험한 것만으로 승리를 거두는 예전의 자신이 더 그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는 지금의 그의 모습은 3개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던 때보다 더 믿음직하다. 더 강하다고 느낀다면 조금 무리일 수도 있으나 심지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는 여전히, 다른 테란들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빌드를 이리저리 돌려서 더 강하게 만들어버리는 천재이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쫓기는 것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예전의 그에게서 볼 수 없었던 여유가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이윤열은 인터뷰에서 한동욱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 예전의 이윤열이라면, 그랬을 것 같다. 한동욱에게 기대고 있다는 느낌을 줬을 것이다. 들으나마나한 아부로 싶습셉습하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의 그는 오히려 다른 이들의 버팀목이자 울타리로 서있는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라는 오락질과 많은 이들이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말하자면 관점에 대한 이야기. 그곳에 있었던 이들에게는 공유할 수 있으나 서로 겹칠 수 없는 관점이 있으리라. 이윤열이라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보는 시간, 그것은 컨트롤이나 빌드, 멀티태스킹 같은 것이 더욱 정교해지고 세련되기까지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는 서지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어깨를 내주며 또 그들을 품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까지의 시간. 이윤열은 그렇게 성장해왔다.
그도, 그들도, 그리고 나도 다 같이 성장해왔습니다.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어요. 한순간에 사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이 바닥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할 때, 같이 웃고 울며 떠들었던 축제 같은 시간 대신에 한 소년이 남자가 되기까지의 시간을 되새기며 이 바닥은 헛된 곳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너무도 감성 짙은 이야기일까.



